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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사건에 나타난 한국인의 저급한 민족주의

최진호 명예기자
지난 18일, 두산 야구선수 리오스가 겪은 에피소드다. 이날 오전 숙소인 과천에서 사복차림으로 혼자 나갔다가 행인 4명에게 둘러싸였다. 그들은 미국인인 리오스에게 “버지니아 총격사건에 대해 한국인으로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고 한다. ‘한국인으로서’ 웃지 못 할 재미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은 죄인이다!

버지니아 총격사건 직후 한국인 한 명이 팔에 부상을 입었고, 범인은 중국계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후 중국인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듯 인터넷 댓글을 통해 나타나고, 역시 비열한 중국인이라고 싸잡아 비난했다. 그리고는 사건 자체나 미국 사회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옆집 불구경하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범인이 한국인으로 밝혀지자 많은 한국인들은 난리가 났다. 미국의 포털, 언론사 사이트 및 추모 사이트에 한국인으로서 사과한다는 글들을 남겼다. 여론은 미국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몰아갔고, 해외 거주 우리나라 국민들에 대한 관리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리로 끌고 갔다. 심지어 미국에 위로금을 전달해야 한다는 이상한(?) 사람들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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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일 시청앞광장에서 열린 버지니아 참사희생자 추모 촛불집회 모습 ©뉴스미션


이러한 흐름 속에서 지난 21일에는 선진화국민회의와 재향군인회 등 보수진영 248개 시민ㆍ사회단체 회원과 시민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광장에서 ‘버지니아 공대 참사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다음 카페 ‘버지니아희생자 애도 추모제’의 회원 등 일부 네티즌들은 22일 저녁 시청 앞 서울광장에 모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했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한국인은 죄인’이 되어버렸다. 단순한 죄인을 뛰어넘어 테러리스트 집단이 되어버렸다.

한국인의 민족주의와 기회주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러한 과잉 반응은 무엇 때문일까. 단순히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추모의 성격이라고 하기에는 사건 직후의 언론보도나 대다수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너무나도 억지스럽다. 범인이 한국인이라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죄책감을 느낀다는 천박한 수준의 민족주의적 발생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국가적 차원에서 사과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게 아닌가.

천박한 민족주의와 더불어 양극단의 한 쪽에 서 있는 국수적 민족주의도 등장했다. 동아일보는 23일 기사를 통해 사과해야 할 쪽은 오히려 미국이라며 미국 사회를 질타했다. SBS는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해서 미국인의 90%가 한국인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보도를 내보내기도 했다. 여전히 민족주의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은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과 한국이라는 집단 속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는 것이다.

죄책감이라는 것은 감수성을 파고들기라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감정적 차원을 벗어난 이해타산적 태도 또한 취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사회 속의 한국인이라는 개인의 범죄 후에 나타난 언론의 보도는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사건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여 보도하며, 개개인은 이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가령, 미국 내 한국 유학생들의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피해 의식적 태도, 앞으로 미국 유학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 비자 발급이 까다로워질 것이라는 우려와, 반대로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안심성 보도 등이 그렇다. 또한 한미관계에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암묵적 두려움 또한 내재되어 있다. 미국 사회의 한 사건을 통해, 이렇듯 이해타산적으로 바라보는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비열한 기회주의적인 특성을 가진 것은 아닌가 의심케 된다.

입장이 바뀌어도 똑같은 민족주의

만약 우리나라 대학에서 미국인 유학생이 총기난사를 해서 버지니아 총격사건과 같은 참사가 있어났다고 가정을 해보자.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가장 먼저 언론에서 탑(top)기사로 내보내고, 몇날 며칠 반 이상의 꼭지들로 보도를 채울 것이다. 인터넷 공간은 난리가 난다. 미국에 대한 욕설과 함께 반미감정이 최고조로 이루어질 것이다.

인터넷은 또 하나의 행동을 만들어낸다. 극렬한 반미시위와 함께 성조기를 불태우고,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미국철수를 외칠 것이다. 또한 시청 앞 광장 및 서울 곳곳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촛불시위가 연일 펼쳐질 것이다. 미국인을 싸잡아 “역시 미국놈들”이라는 비하와 함께 우리들의 의식의 근저에 있는 반미감정을 다시 한 번 재생시킬 것이다. 상황과 입장이 정반대가 되어도 우리는 민족주의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

미국인들의 전반적인 태도는 미국의 사회적 책임을 탓하면서 총기소지의 자유에 대한 재고와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적 부적응아 및 정신적 질환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리와 치료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있다. 한국인을 탓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실제로 조씨는 한국에서 산 날보다 미국에서 산 날이 많을뿐더러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이미지보다는 미국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다만, 한국에서는 국적이 한국이라는 이유로 그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한국인’이라는 ‘테두리’ 안에 강력하게 집어넣고, 그를 우리와, 우리를 그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또 다른 모습들

한국인들의 집단주의는 강력하다. 2002 월드컵 때는 최고조에 이르렀다. 축구 경기가 열릴 때마다 대규모 응원단이 소집되고,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응원을 한다. 한-일전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유는 없다. 일본이라는 민족에 대해 과거의 피해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민족의 자존심 대결로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최근 FTA 협상이 타결되었다. 반FTA 세력에서는 여기저기서 촛불시위를 한다. 무슨 이슈만 생기면 촛불시위와 거리행진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한다. 일단 모여라는 식이다. 개인의 영향력은 무시되고, 흐름에 따라가는 하나의 집단에 귀속된 불쌍한 사람들이다.

한국인의 극단화된 집단적 민족주의는 그와 우리를, 우리를 그와 동일시한다. 민족주의가 필연적으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 현상에 대해서 사회와 개인의 관계성과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 차이, 개인의 차이를 인지하고 그에 맞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와 한국과의 문화적 차이, 사회적 차이, 조승희라는 개인의 사회성 및 인간성 내지는 정신적 차이를 분명히 파악하고 나서 그 사건을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집단화시켜 동일시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미국에서는 ‘한국인 범인’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한국인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건을 보는 시각과 한국적 민족주의의 나아갈 방향

우리는 이번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민족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토대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란, 어떤 집단의 민족성을 강조하는 구성적 이념으로 혈연, 문화, 역사 등 민족의 정체성에 관련된 요소들을 가치 있게 지켜보고 지켜나가려는 의지와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이번 사건을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건을 일으킨 한 개인은 혈연은 같을지 몰라도, 문화와 사회의 요소가 공유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성숙된 대응 태도와 같이 미국의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것은 다만 미국에게 책임 전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회문화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사회 현상 자체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와 우리를 동일시 할 이유도, 그래서 죄책감을 가질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민족주의는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 민족주의는 우리 사회의 결집을 도와 사회 발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집단적 행동이 일어나기 때문에 조심히 다루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인은 혈연적인 개방성을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우리 민족은 순혈주의다, 라는 지배적인 잘못된 의식 때문에 100만 명이 넘는 귀화한 사람을 우리 민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허구적인 순수혈통 단일민족은 허상에 불과하다.
민족주의가 올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허상을 무너뜨리고, 다민족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인정하고 그들을 포용하여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올바로 정립하고 발전해 나가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제2의 조승희’가 우리 사회 안에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바로 이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싸잡아 집단화시키고, 분명하게 구분 짓는 민족주의가 아닌 아우르는 민족주의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모쪼록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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