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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촛불집회를 거치면서 문화제로써의 촛불이 아니라, 집회와 시위로써의 촛불로 바뀌었다. 촛불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진화했고, 비판하는 입장에서 볼 때는 변질됐다. 의미의 변질은 반정부 감정과 각종 단체들의 주도 내지는 선동과 정부와 경찰의 강경진압과 태도의 미변화가 함께 촉매제가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는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뭐 그리 영웅시하는지 모르겠다. 하나의 인간, 정치인, 대통령으로서 잘한 것도 잘못한 것도 있는데 말이다. 잘잘못은 차치하더라고 이제 이것(추모정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한계에 다다랐나보다.

6.10 민주항쟁 22주년 범국민대회의 성격은 무엇이었을까. 1987년의 민주화를 향한 목소리를 되새기고, 민주주의에 역주행하는 나라를 바로잡자는 것 아니었나. 물론 불특정다수의 시민은 이런 선량한 의도를 가지고 나왔겠지만, 역시 야4당과 시민단체는 이를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정당이 얼마나 시민과 호흡했다고 여기서 당당하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하면, 민주노총, 화물연대, 쌍용차는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데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 노무현으로 펌프질하여 부풀려진 6.10 민주항쟁 기념행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특정단체들의 입장을 대변한 데에 유감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효순이 미선이를 이용하는 작태는 더 가관이다. 이번 7주년 행사에는 6.10대회 폭력진압 규탄집회와 맞물렸으며, 노 전 대통령 시민분향소가 마련된 대한문 앞에 효순이 미선이 추모분향소도 마련해 놓았다. 노 전 대통령도 모자라, 효순이 미선이를 이용하는 걸 보면 두 친구가 하늘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노 전 대통령에 이은 두 번째 '거리'만들기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성공적이다. 지난 해 촛불집회에서도 비슷했다. 효순이 미선이와 광우병은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그리고 이번에는? 알 수 없다. 이제 6.15 공동선언이라는 세 번째 '거리'가 다가온다. 또 다시 모일테지 하는 기대마저도 생긴다. 그 다음에는 또 어떤 '거리'가 기다리고 있을까?

'거리'가 하나씩 하나씩 촛불을 점화시킨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과 이익을 대변하는 수단으로 만들려는 세력이 목소리를 하나씩 점화하고 있다. 이제 언론은 이를 의제로 삼아 점화시킨다. 여기서는 언론의 역할에 대해 굳이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전형적인 프라이밍(점화이론, priming effect)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르게 보면 오히려 '거리'를 만드는 일에 동참하거나, '거리'를 만드는 이들의 의도된 프레임(frame)을 형성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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