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33118.html
[한겨레] 2009-01-14

미디어가 경제를 살릴 수 있는가?

언론관계법 개정을 두고 온나라가 시끌시끌했다. 여야가 합의해서 문제를 풀기로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데 언론관계법 개정으로 재벌방송과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를 허용해 여론의 독과점을 해체시킨다는 주장이 나오더니 최근에는 경제 살리기니 민생법인이니 해서 경제적 담론으로 바뀌었다. 언론관계 법안에서 추구하려는 경제적 가치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글로벌 미디어기업을 육성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방송을 사유화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우선 여러 사람이 말하는 글로벌 미디어 육성론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미디어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제약이 많다. 언어 문제, 문화적 차이는 우리나라 미디어가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서 늘 발목을 잡아왔다. 여기에는 문화적 할인(cultural discount)이 작동한다. 문화적 할인이란 영어를 사용하는 미국의 미디어기업은 세계 시장에서 손쉽게 경쟁력을 갖고 투자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의 미디어기업은 문화적 제약 때문에 성공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논리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만든 문화 상품에는 할인이 따르기 때문에 미국의 글로벌 미디어만큼의 경쟁력 있는 미디어를 만들려면 몇 배의 비용을 투자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전자·자동차·의약 등은 문화적 할인이 없는 영역이다. 반도체나 전자 부문에서 삼성전자나 엘지전자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문화적 할인의 예외 영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화두는 재벌방송과 일자리 창출론이다. 이 주장도 별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방송기술의 발전으로 점점 더 적은 인력으로 방송을 운영하고,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1인 미디어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사람을 많이 고용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방송사를 운영하고, 제작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때문에 채널이 엄청나게 늘었지만 방송 산업은 인력을 대폭 감축하는 추세다. 방송시장에 새로운 서비스, 첨단 기술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투자의 수익성이 낮아지는 등 방송은 이미 블루오션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경제위기여서 기업은 광고비를 대폭 깎고 있고, 방송 산업은 말 못할 재정적 고통을 겪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 중심의 지상파 방송을 재벌방송으로 바꾼다 해서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진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대기업이 방송사를 인수하면서부터 지속적으로 인력을 감축했다. 대기업은 방송 경영의 목적을 이윤 극대화에 두어 최소 인력만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재벌기업은 살얼음판에 서 있다. 국제시장에서 도태되지 않도록 주력 사업의 경쟁력 강화에 온 힘을 써도 될까 말까 한 판에 방송이라는 국내용 소비재 사업, 사양사업에 투자해서 큰 낭패를 당하지 않았으면 한다. 재벌기업이 실패하면 한국 경제나 국민 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만약 재벌기업이 진정으로 우리나라 방송의 국제 경쟁력을 걱정하고, 고용창출을 생각한다면 방송사 소유 욕망을 버리고 ‘쥐라기공원’과 같이 큰돈을 들여 국제 시장을 겨냥한 대작에 투자하라고 말하고 싶다. 엔씨소프트가 ‘리니지’를, 넥슨이 ‘메이플 스토리’를 공급해 세계시장을 흔들어 놓았듯이 재벌기업은 콘텐츠 제작 부문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김승수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